아래의 글은 정 태윤 동기가 "훈민정음 창제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제목으로 문연회에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에게 보내온 글이다.  (게시자 주)

      “명/조선 초기의 문화교류”라는 거창한 주제인데... 대단하신 분들 앞에 이야기 한답시고 나서는 건 내 주제를 한참 넘는 일이라 조심스럽다.

     우선 왕조는 왜 바뀌는가? 질문해보자. 또 바뀌면 뭐가 달라지는가? 고려 => 조선? 王씨 李씨로, 불교대신 유교... 배운 건 이 정도가 전부. 과연 그런가? 왕조교체란 혁명이다. 혁명은 먹이사슬 체제를 통째 바꾸는 사태 -- 세습되어온 질서란 깨기 어려우니, 과격한 수단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서였을 거다. 그래서 먹이사슬의 질서가 바뀔 때마다 왕조 역시 바뀌어 왔다. 그 과정에 자연 무리수도 따르기 마련... 그래서 생긴 지저분한 부분을 새 집권세력들은 감추곤 했다. 그러니 사서史書들이 누더기처럼 초라해질 수밖에... 결국 역사는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을 감춘 미스터리 창고로 변해갔다.

     정화 함대~ 의 초점도 훈민정음 탄생의 미스터리다. 까마득한 옛날 옛적에 감추어진 진실에 다가서 려면 가급적 사방에서 접근해봐야 한다. 그러다 개연성 있는 상황과 만나면 그럴 듯하게 썰을 풀고 싶어지는 게 얘기꾼의 속성이니 부디 황당하다 탓하지 말고 들어주시기를...

     삼성전자가 휴대폰 개발을 시작하던 '80년대 후반, 나는 그 회사의 통신부문 기획실에 있었다. 연구원들과 머리 맞대던 시절인데 그때 한글 자모의 우수성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귀한 걸 너무 쉽고 편하게 누리다보니 그게 얼마나 대단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도 함께... 중국이나 일본의 자판이 우리보다 얼마나 불편한지 아시는 분은 아마 이 말에 공감할 거다. 도대체 어떤 배경에서 이런 걸작이 탄생했을까, 또한 시력을 잃을 지경까지 세종을 몰아세웠을까? 정음 창제라는 대작에 도전한 집념의 치열함은 “애민愛民” 만으로는 납득키 어려울 만큼 강했다.

     기원이 밝혀진 문자? 그런 건 없다. 신화시대로 거슬러가거나 다른 문자의 차용파생 흔적 정도가 고작. 오직 정음만이 논문 쓰듯 발명된 문자다. IT 시대를 맞이해 더욱 빛나는 편리함 역시 인공문자의 논리성 덕분. 그런데 막상 정음의 산실이라는 집현전은 규모나 조사역량이 초라하다. 반면에 자료수집 범위는 동북아는 물론 인도, 히브리 문자까지 실로 방대하고... 이 상황이 납득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