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르 마라이의 글은 운문같은 산문이다. 세상의 풍경들과 삶의 세밀한 순간들이 저자의 순수한 눈에 예리하게 포착되고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는 삶을 관조하며 그 안에 감춰진 진실을 추구하고 마치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인 것처럼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생의 순간들을 만끽하려고 했다. 그는 바람, 태양, 비, 구름 그리고 여름을 사랑했다. 

그는 진정한 일이나 참된 모습과는 다른 사회에서의 성공이나 속물적인 가치관에 도전하고 세상을 환상과 동화의 세계로 투시했다. 그는 비현실적이고 무익한 것을 느끼는 용기를 가졌으며 시와 여인, 포도주와 명예 그리고 마음을 울리는 이성(理性)을 사랑했다.

인간의 본질과 갈등, 극단의 순수, 이상향으로서의 예술, 그리고 바람직한 삶과 그 마무리를 중시하던 헝가리 출신인 작가는 해외에서의 오랜 망명 생활 끝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잠시, 그의 사유의 늪에 빠져 본다.

*

인간은 사는 동안 하늘과 땅 사이에서 방황한다. 신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여름에는 산딸기 주스, 레몬수, 온유한 날씨가 있지만 한편, 대화재, 유혈, 치정살인이 일어나는 또 다른 여름의 세계가 있듯이 사람은 두 세계 사이의 어딘가에 산다.

산다는 것은 언제든지 치명적인 운명(죽음, 빈곤, 굴욕, 사랑)과 만날 수 있는 모험의 연속이자 고통과 기쁨, 우연과 계획의 연속이다. 정취 뒤에는 고통과 욕구, 질서의 뒤에는 무질서, 장미 정원의 평화 뒤에는 바다가 존재한다. 그래서 삶은 문학이다.

삶의 선물은 무엇인가. 따사한 늦여름, 연극의 초연, 꿀처럼 달콤한 진한 햇빛,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의 달리아,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혜, 이렇게 끝나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의구심, 남아 있는 숲, 안개, 여름날.. 삶의 달콤함과 열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전부다.

길을 떠나는 사람은 부럽다. 감정은 역사적, 객관적인 사실과 무관하게 비밀스러운 삶의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약간의 유독물질은 그것을 흡입하고 마시는 순간 행복감을 준다. 그 순간에 나는 살아 있으며 모든 아픔을 잊을 수 있다.그러나 삶과 기쁨은 모두 부서지는 것.. 세월은 행복을 부식시킨다. 우리에게 아주 친밀했던 것만이 죽을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짧은 순간, 여름은 꽃의 언어로 말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기억을 되살려 마음껏 낭비하라. 이 넘치는 이름다움, 너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사는 동안 분노를 간직하라.

*​​

살기 위해서는 뭔가 가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뭔가를 건축할 때만 살아 있다. 예술이 없는 삶은 초라할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삶은 원소이면서 재료다. 훌륭한 화가, 작가, 예술가는 블라인드 내린 창문을 그리면서 그 컴컴한 유리창 뒤에 숨어 있는 비극적이거나 행복한 인간의 운명을 예감하게 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 우주와 삶이 그 낱말들을 통해 의미를 얻듯이 도구나 경험보다는 감각과 꿈을 통해서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장엄하고 찬란한 것을 배울 수 있다.

*

관능적인 여름의 향연이 지난 후 각성의 계절, 가을은 짧다. 가을에는 우수와 변화, 관능, 죽음에의 불안, 흥분이 있다. 가을을 노래하라. 정열을 상실하면 사랑과 고통의 격류도 사라진다. 세상은 그렇게 절망과 고통을 빚어 창조하고 만들고 형성한다. 절망의 체험을 많이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이제 너는 고통을 겪었으니 퇴장할 수 있다. 사랑의 감정은 소멸하며 기억을 남긴다. 흘러간 정열은 삶의 비밀스런 내용이었고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회상은 아픔이다. 모든 사물의 밑바탕, 남자와 여자의 그리움 깊숙한 곳에는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늙는 다는 것은 차츰 빛바랜 듯 무미건조해지는 삶을 말한다. 나이가 먹으면 육신과 정신은 도태되고 건강, 명성, 사랑, 기쁨은 사라진다. 남을 인정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현실을 인정하면서 의식적으로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즐겁게 사는 시기이다. 미리 죽음을 준비하라.

생의 복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에게는 오성이 있고 그래서 삶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처럼 총체적인 외로움 속에서만 세상의 물음에 답변을 할 수 있다. 나는 육신의 죄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편안함, 게으름을 좇고, 내 힘이 미치지 못한 것, 내가 접하지 못한 것,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만 회한을 느낀다. 인간은 죄에 약하며 스스로의 죄에 대해 무디어진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죄를 벗어나기 보다는 덜 짓는 쪽으로 절제가 필요하다. 지혜, 정신 이성은 선(善)의 탄약을 장전하지 않으면 무적의 무기가 아니다. 우리를 불태우는 것은 여름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죄, 결점이다.

​치명적인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사랑인가, 의지인가, 은총인가, 물음을 제기한다. 은총과 기적은 존재한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의 일에 말없이 관여하시고 정확한 결산을 요구하신다. '신들이여, 제가 삶과 화해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며 겸허하고 사람답게 인간의 법칙에 따라 나이를 먹고, 또렷한 정신으로 품위 있게 고통을 참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게 제가 소청하는 전부입니다.' 은총을 받았으니 가서 살아 있는 한 속죄하라. 인간은 죽음이 가까이 오면 허둥지둥 서두르기 시작한다. 당장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포기하고 죽음과 친근해 지고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

<하늘과 땅 ,산도르 마라이 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