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정유년 2017년도 이제 가을의 본령(本領)에 접어들었다. 9월 초에 들어 더위가 한풀 꺽이더니 백로(白露)를 전후하여부터 날씨는 완연히 가을에 접어든 기분이다. 가을이 우리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날씨의 서늘해짐과 더불어 무르익기 시작하는 오곡의 결실로 상징되는 수확의 계절이라는 점이다.

오곡(五穀)의 풍성함과 백화(白花)의 만발함은 가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정취를 만들어낸다. 오곡은 보통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일컫지만 그 외에도 곡물은 수도 없이 많다. 백화는 말 그대로 백 가지 꽃이니 우리 중 아무리 꽃에 박식한 사람이라도 백 가지 가을꽃들의 이름을 곧바로 대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곡물과 꽃을 동시에 갖고 있는 작물들이 있다. 특히 그 꽃이 상당한 경관(景觀)을 지니고 있는 작물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메밀이다. 메밀은 원래 제사나 일반적인 의례에 사용되는 곡물로는 적당한 것이 아니지만, 짧은 기간 (80일~90일)에도 쉽게 잘 자라고 추위에도 잘 견뎌 예전에는 구황작물이었으나, 요즈음은 건강식품으로 우리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작물이다. 메밀로 만드는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평양 냉면, 메밀 국수, 막국수, 메밀묵, 메밀꽃 동동주 등이 있는데 모두가 별미식으로 알려져 있다.

메밀의 또 하나의 장점은 그 꽃이 매우 높은 경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필꽃이 피어 벌판을 덮을 때, 이는 보는 이들의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메밀은 보통 여름에 심는데, 그 파종 시기도 7월 중순에서 8월 초순에 이르기까지 매우 유연하며 꽃피는 시기는 보통 9월 초순에서 9월 하순까지, 그리고 수확기는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에 이른다.

따라서 9월은 메밀꽃이 피는 시기인 것이다. 강원도 봉평은 대체로 일찍 파종을 하므로 9월 초순에 메밀꽃이 만개한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리 주변에는 매년 이 시기가 되면 메밀꽃이 사방 벌판을 덮게 되는데, 이것이 현대 시인/작가인 이 효석이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백미(白眉)여서, 여러 번 영화화되었고, TV의 여러 문학 채널에서도 소개되었었다. 내용이 매우 흥미진진하여 읽는이(또는 보는이)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좀 길지만 실감을 얻기 위해 아래에 풀어서 이야기해 본다. 그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평창군 봉평면에서는 5일마다 큰 장터가 선다. 장이 서는 날이면 주변 지역으로부터 각종 장물(매물)을 들고 오는 장돌뱅이(장사아치)들로 붐빈다. 여기 봉평장에 장돌뱅이로 등장하는 사람은 주인공 허 생원과 그의 장사아치 파트너인 조 선달은 친구 사이이다. 조 선달은 결혼하여 처자가 있고 정착지도 있는 사람인데 반해 허 생원은 평생 옷감 장사를 하며 정착지도 없이 혼자 사는 외톨이인데, 이것이 안스러워 조 선달은 기회만 있으면 땅을 사라든지, 결혼을 하라든지 하는 조언을 하지만 그는 매번 이를 거절하는데, 그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에도 봉평 어느 주막의 주모로 있는 얼굴 반반한 청주 댁과 인연을 맺어주려 자리를 마련했는데도 허 생원을 이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봉평장(逢坪場)터에서는 또 젊은이들과 아이들도 등장하는데, 그들 중 <동이>라는 20 대 초반의 한 청년이 유난히 주변의 눈길을 끈다. 그는 좀 제멋대로인 성질이 있어서 수틀리면 누구나를 불문하고 달려들어 싸우기가 일쑤다. 그리고 싸음 실력이 좋아서 한번 붙으면 지는 법이 없다. 그런데 그가 이런 행동을 하는데도 이상하게 여자들 사이에는 항상 인기가 높다. 그 다음 날도 허 생원과 조 선달은 <청주 집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이 <동이>가 나타났는데, 이 녀석이 주모인 청주 댁에게 비녀를 하나 선사하고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어서 서로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청주 댁이 동이에게 정신이 팔려 허 생원이 술을 더 갖고 오라는 말도 못 듣고 시시덕거리고 있자, 화가 난 허 생원이 그들 앞으로 가서 동이의 멱살을 쥐고 호통을 쳤다. (어린 놈이 벌써부터 계집질이냐, 너 인생 좀 똑바로 살아라, 등등.) 주변에서는 <동이>의 성질을 아는지라 또 싸움이 나겠구나 하는 분위기인데 이상하게 동이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떴다. 조 선달은 왜 괜히 오기를 부리느냐 하면서 허 생원에게 핀잔을 준다.

허 생원은 이번 봉평장에서는 별로 재미를 못 봤다. 허 생원은 항상 그가 장물을 늙은 나귀에게 짐지우고 다녔는데 장바닥 꼬맹이 소년들이 이 늙어 빠진 나귀의 주책스런 행동을 보고 심하게 놀려 댔다. 아이들이 이 늙은 나귀를 놀려대면 이상하게 허 생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신세 한탄을 하는데 그 도가 좀 지나치다. 친구 조 선달은 왜 그 나귀를 자기와 동일시하느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또 위로를 해 준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이번 봉평장에서는 장사를 그만 두고서 여기서 칠십리 거리인 대화장(大和場)으로 길을 떠나기로 했다.

이제 그 둘이 봉평에서 대화로 막 길을 떠났는데 저 멀리서 아까 그 <동이>가 이리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조 선달이 그에게 어디로 가는냐고 물으니 동이는 대화로 간다고 한다. 그럼 같이 가자고 하니 그러자고 하면서 조금 뒤에 떨어져 따라온다. 이렇게 허 생원과 조 선달, 그리고 동이는 소설의 주 무대가 된 봉평-대화 70리 길에서 그들의 특별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길동무로 만나 봉평장에서부터 대화장까지 메밀꽃이 만개한 메밀밭 70리를 걷는 동안, 허 생원이 주화자(主話者)가 되어 그의 친구 조 선달에게 그의 과거의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젊어서 옷감을 파는 장돌뱅이를 시작했는데, 그러다 우연이 봉평의 어느 빚으로 몰린 성 서방 댁에서 그 외동딸(성 씨 처녀)를 보게 되었고, 그 처녀가 빚 갚을 돈을 구하러 나가서 메밀꽃이 만발한 어느 들판의 오두막에서 쉬고 있엇는데 우연히 그곳에 들어온 젊은 허 생원을 만나 어쩌다가 하룻밤의 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빚에 몰려 집안 전체가 파탄이 난 부모를 따라 다른 지방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성씨 처녀가 떠나자, 허 생원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결국 돈을 많이 벌어 이 성서방네를 구해주고 성씨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야심찬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장사로 어느 정도 돈을 벌자 이 가족을 찾아 물색을 해 봤지만 찾지 못하던 차에, 어느 동네에서 어느 청년이 외상 노름을 하다가 져서 노름 빚쟁이들에게 그 손가락을 짤리게 생긴 것을 보고는 정이 많은 젊은 허 생원이 결국 그동안 모았던 돈을 전부 이들 노름빚쟁이들한테 주고는 그 청년을 구해 내었다. 그가 바로 그 이후 평생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 함께 장사를 해온 조 선달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오는 동안 날이 저물어 그들 셋은 어느 주막집에 들어서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이번에는 동이의 사연에 대해서 대화가 오고갔다, 여기서부터는 동이가 그들 중의 중심 화자(中心話者)가 되어, 두 사람의 질문에 따라 그의 과거, 즉 왜 이렇게 장에서 돌아다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의 부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동이는 아버지 없는 아이로 어릴 때 계부의 미움과 구타 아래에서 자랐는데 그가 나이가 들자 그는 어머니를 그 못된 계부로부터 풀어주고 싶은 마음과 또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돈을 벌러 장돌뱅이가 되어 봉평과 대화 장터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때 주막들과 장사아치들을 등쳐먹는 소위 수전(收錢)꾼이 관원들과 한패가 되어 주막에 들러 그들에게 다가왔다. 술을 따르라는 그의 요구에 허 생원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이들이 곧 성질을 내어 허 생원이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되자 이를 본 동이가 그들에게 대들어, 결국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지만, 그들은 결국 힘센 젊은이 동이를 당해 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이 사건으로 인해 허 생원과 동이 사이에는 서로 끈끈한 감정적 교감이 일어나게 된다.

이제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곧이어 개울을 건너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조 선달이 먼저 나귀에 장물을 싣고 개울을 건너고, 뒤에 동이와 허 생원이 작대기 하나를 서로 잡고 같이 개울을 건널 때, 허 생원은 동이에게 동이의 모친의 과거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다. 동이로부터 들은 대답은 그 어머니는 느닷없이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는 바람에 친정으로부터 쫓겨 났다는 사실, 그리고 모친은 그 후 딴 지역에서 살았지만 원래 봉평 출신이라는 것을 말하자, 허 생원은 그의 생부의 성씨(姓氏)를 물었다, 이에 대해 동이는 그 생부의 성씨는 모르고, 단지 그의 모친으로부터 생부가 지푸라기로 풀을 잘 짜서 초 서방(草書房)이라 말을 했다라는 말을 하자, 이를 듣고 있던 허 생원은 갑자기 잡은 손을 놓쳐 개울에 빠지고 말았다. (허 생원은 성 씨 처녀와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정을 나누기 전에 지푸라기 풀을 짜서 여자에게 준 적이 있다.)

이에 동이는 사양하는 허 생원을 등에 업고 개울을 다 건너게 되는데, 동이의 등에 업혀서도 허 생원은 계속 그의 모친이 생부를 보고 싶어 하느냐, 모친은 어디에 사느냐 하는 질문 등을 물었다. (모친은 제천에 산다고 했다.) 드디어 개울을 다 건너자 동이가 나귀의 끈을 잡자 조 선달은 동이가 왼손잡이인 것을 말하자, 동이는 그렇다고 하면서 그의 생부도 왼손잡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허 생원도 왼손잡이였다). 그러나, 물에 빠져 젖은 옷을 짜서 말리며 허 생원은 자기가 물에 빠진 이유를 늙은 나귀 생각이 갑자기 나서 그렇다고 둘러 대면서 나귀가 그 주제에 새끼를 만들어 그 새끼를 봉평에 갈 때마다 보는데 매우 귀엽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제 허 서방의 기분의 변화는 누구나 감지할 수 있었다. 다시 옷을 입고 길을 떠나며 허 생원은 느닷없이 "대화에 가면 그 장은 대충 마무리한 후에 제천으로 가자"고 했다. 동이도 이에 동의하면서, 가는 길에 어머니도 보고 가고 싶다고 했다. 또 동이가 늙은 나귀의 새끼 조랑말을 보고 싶다고 하자, 허 생원은 "그것을 이제 더 이상 볼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 조 선달을 쳐다보며 씽긋 웃는다. 다시 함께 길을 가면서 허 생원이 "이제 나도 자네처럼 땅뙈기나 하나 살까?"라고 하자, 조 선달은 "자네가 어째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땅뙈기를 사고 싶다는) 그런 말을 다 하는가?" 하면서 둘은 큰 소리로 웃는다. 이렇게 이 소설은 막을 내리고 있다.

가산(可山) 이 효석(李孝石)은 1907년 평창군 봉평리에서 태어나서, 한참 활동을 하던 때인 1942년애 36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왜 천재는 모두 이렇게 요절하는 것인가?). 서울로 올라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성제일고보=일제 때 경기고의 전신)를 거쳐 1930년 경성제대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28년 <도시와 유령>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 당시 그는 비참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도시와 유령>은 그 당시 도시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고발한 것으로, 그는 그때로부터 1931년까지 경향문학(傾向文學)적 작품활동으로 유진오(兪鎭午)와 더불어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연맹으로부터 동반 작가라는 명칭을 얻었다.

생활의 안정을 얻은 1932년부터 그는 이후 그의 본령이 된 순수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향토적·이국적·성적 모티프(motif)를 중심으로 한 특이한 작품세계를 시적 문체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30대 전반에 해당하는 1936∼1940년 무렵은 작품 활동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이다. 「산」·「들」·「메밀꽃 필 무렵」(1936)·「석류(柘榴)」(1936)·「성찬(聖餐)」(1937)·「개살구」(1937)·「장미병들다」(1938)·「해바라기」(1938)·「황제」(1939)·「여수(旅愁)」(1939) 같은 그의 대표적 단편들이 거의 이 시기의 소산이다.

이효석의 작품세계의 특질은 한마디로 향수(鄕愁)의 문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 지향은 안으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밖으로는 이국(異國), 특히 유럽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난다. 그의 대표작인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그가 안으로 지향한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이 효석의 고향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대화면 사이의 메밀 벌판의 이러한 분위기에서 쓰여졌다. 향토의 내음새가 물씬 풍기는 우리 산천의 문학적 표현은 이효석 순수문학의 백미를 나타낸다. 그 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을 살펴보자.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칠십 리 길에 대한 묘사는 두고두고 한국 문학사 상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기에 모자람이 없어서 지금도 매년 그곳에서는 문학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 정도다. 이효석의 이러한 순수문학적 전통은 그 후 김동리, 황순원 등을 거쳐 우리나라 순수문학의 장르를 형성했다.

    http://korean.visitkorea.or.kr/kor/bz15/where/festival/festival.jsp?cid=507635

2017년 올해에는 <평창 효석 문화제>가 9월 첫 주일(9월 2일에서 10일까지)에 있었다. 그동안 매년 메밀꽃 축제로 자리매김한 평창 효석 축제는 그동안 우수 문화 행사로 많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내년은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해여서 더욱 그 의미가 특별했으리라 생각된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평창군은 앞으로 이 축제를 더 발전시켜 줄 것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메밀과 메밀꽃에 대한 인식을 좀 더 진취적으로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즉,

우선 건강식으로 메밀이 들어 있는 음식 -- 냉면, 메밀국수, 막국수, 메밀묵 등 -- 을 많이 애용하여 건강을 증진시키고, 그 다음으로 메밀꽃 동동주로도 한 잔...

그래서 우리나라에 메밀의 수요가 더 늘어나, 메밀밭들이 많이 생겨나서 줄어드는 쌀을 수요를 대체할 수 있도록 되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메밀꽃 축제에 참석해서 메밀밭의 운치와 메밀꽃 향기 내음을 맡을 기회를 가져 보았으면 좋겠다.

2017. 9,16.          지당(智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