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날”이라는 내 글에 대한 종민의 답글을 보고 그날에 대한 기억이 각자 자기가 겪은 일 위주로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한두명 동기 이외에는 내가 무기정학 통보 받은 것을 모르고 나도 이 사실을 3년전 쯤부터 동기들과 밥먹다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이제 70 중반에 접어들어 대부분 뒷방 늙은이가 되었으니 이 사실을 게시판에 올려도 무방하다 싶어서 내 기억에 박혀있는 무기정학 동지 건이와 통화하고 그 후 준호와도 통화하고 인터넷도 뒤지고 나름 정확하게 썼다고 올렸다. 그런데 건이가 나의 범행사실을 모르는 것에 1차 충격, 종민의 답글에 등장한 학생회와 박상근회장 이야기는 나는 물론이고 건이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2차 충격을 먹었다. 상근과 역시 생후 처음 통화하고 건이와 다시 통화하여 본 결과 종민의 글 속에 등장하는 선배가 우리가 고2때 한일협상 반대 시위를 서울시 도심을 통과하며 성사시킨 고 조영래 변호사 (1947-1990)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선배가 건이에게 한일협정 비준 반대 시위에 대한 조언을 했던 것과 별도로 당시 고3 학생회와 회의를 했던 것 같다. 그 만큼 조선배가 한일협정 비준반대를 염원했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경기고 제2회 “미의 제전”에서 미스터 경기에 선발되어 찍은 기념사진 뒤에 “1965년 4월 10일” 이라고 적혀있으니 되자 마자 시위현장에서 부름받은 몸이 되어 본관 1층 공작실에 예비되어 있던 곡괭이를 사용하여 폐쇄된 정문의 자물쇠를 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창진을 포함한 전위 부대는 교문 앞에 대기중인 경찰에 잡혀갔다 훈방되었다고 한다. 나를 포함 일부는 경찰 저지를 뚫고 낙원동까지 진출하여 연좌 시위중 진압경찰에 밀려 패주하였다. 그 시간 다시 교문이 잠겨 남은 학생들은 교내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그 후 시위 관련자 모두 따로 따로 교무실에 불려가 무기정학을 통보 받았거나 교무실에서 긴장한 탓에 다른 친구의 얼굴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거나 ...하여튼 서로 모르도록 학교에서 징계조치를 취한 것 같다. 그리고 김영기 교장선생님의 재임기간이 1964.11-1965.6 인 것을 고교 홈페이지에서 발견했으니 우리가 고2때 참가한 시위 이후 발령받아 오셨다가 고3때 시위로 좌천 받으신 사실이 성립된다.

나는 66학번으로 공대에 진학하여 1학년 1학기 마치고 군대 3년 복무후 69년 2학기에 복학하여 학교 휴업사태 속에서 12월 초 문을 연 공릉동 교실에서 교양과정 2학기를 1달 만에 대충 마치고 2학년이 되었다. 졸업할 때까지 한학기당 1달 정도 문을 연 학교 대신에 기타 둘러매고 동네 맥주집에서 가서 팝송을 부르거나 클래식 기타 악보를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연주를 흉내 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던 나는 운동권과는 전혀 무관한 공돌이였으니 건이가 나와 통화하며 조선배를 거론하다 나의 무지에 놀란 것이 당연하다.

나의 교문 자물쇠 파손 행위가 시위 당일 창진의 좌절된 “돌격 앞으로” 와 동기들의 호출에 부응한 우발적 범행일 수도 있지만 나의 조부는 상해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하시다 밀정 김극전에게 잡혀 신의주 감옥에서 옥사하신 순국선열이시다. 내가 고1때부터 정부는 건국 유공자 3대손인 중고교생에게 매달 500원을 지급하기 시작한다. 대일 청구권 자금 받기 전이다. 학교 교무실에 매달 500원 수령하러 오는 나를 선생님들이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래서 교감선생님이 교문 자물쇠 파손한 나의 등을 두드리며 “잘했어” 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