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치매 예방약으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의약품이 있는데, ‘콜린 알포세레이트’(choline alfoscerate) 성분 의약품(상품명; ‘글리아티린’, ‘글리아타민’ 등)이다. 이 의약품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예: 아세틸콜린) 대사(代謝)에 관여하여 치매 진행지연 또는 증상개선 효과를 보이는 일종의 치료약이다.  

   ‘콜린 알포세레이트’는 1989년 이태리 제약회사가 개발한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의 전구(前驅, precursor)물질인데, 이 성분을 아세틸콜린의 분해를 막아주는 약물 ‘도네페질(donepezil)’과 함께 사용하였을 때, 뇌세포내의 아세틸콜린의 양이 많아져 치매 지연효과를 보인다. 외국(미국, 일본 등)에서 콜린 알포세레이트 성분 의약제품은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되어 시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 의약품이 ‘글리아티린’, ‘글리아타민’이라는 제품명으로 1995년에 도입되었는데, 건강기능제품이 아닌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어 건강보험 급여가 되고 의사의 진단, 처방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다. 현재에는 134개 제약사가 255개 품목을 생산하고 있다. 건강보험 급여 본인 부담률이 10-20%로, 본인 비용부담이 비교적 저렴하다 보니, 일반인에게는 ‘치매 예방약’으로 잘못 알려져 가벼운 인지장애(예: ‘자주 깜빡깜빡한다.’)만으로도 처방을 받는 등, 뇌 기능을 살리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 약품에 대해 지급한 건강보험 급여액이 2019년 3,000억 원이 넘었다.

    식약처가 인정한 ‘콜린알포세레이트’성분의 효과∙효능은 크게 3가지로, ①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 기질성 정신증후군, 기억력 저하와 착란, 의욕 및 자발성 저하로 인한 방향감각 장애, 집중력 감소(= 치매 증상), ② 감정 및 행동 변화-정서불안, 자극과민성, 주위무관심(= 경도 인지장애/정서불안), 그리고 ③ 노인성 가성(假性) 우울증인데, 특히 효과∙효능 ②와 ③은 가벼운 인지장애 환자들에게 치매예방 목적으로 처방될 수 있는 근거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2020년 6월 식약처에서는 ‘콜린알포세레이트’성분 의약품 255 품목에 대한 임상 재평가 실시 공고를 하여, 해당 제약회사에게 임상 재평가를 위한 품목별 유효성 자료를 년말까지 제출하도록 요청하였다. 76개 품목은 자료제출을 하지 않아 제품허가를 자진 취하하였고, 현재 약 60여 업체에서 임상 재평가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건강보험공단)도 2020년 6월 ‘콜린알포세레이트’성분 의약품에 대한 급여 적정성 재평가를 시행하여 그 결과를 고시하였는데, 효과∙효능 ①에 대하여만 현행의 보험급여를 하고, ②와 ③에 대해서는 선별급여로 본인 부담률 80%를 적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에서는 고시 취소청구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하였고, 법원에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상황이다.

   현대의학의 모든 의술/의료는 과학적 학문지식을 바탕으로 그 효능과 시술 내용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비록, 수천 년의 임상경험이 누적되었다 하더라도(예: 한방의술) 그 의술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학문지식과 효능 검증이 없다면 현대의학의 의술/의료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 점, 즉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evidence-based) 성립‘하는 의료는 현대의학이 다른 의방(醫方)과 차별화 되는 특성이다. 다시 말하여, 의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학문지식과 증거 생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과학지식이란 대상에 대하여 객관적 ‘진위판단’(眞僞, true or false)이 이루어진 결론이다. 주관적 또는 상대적 ‘가치판단’(good or bad, right or wrong, justice or injustice)이 이루어진 내용은 아니다.

   의술/의료의 바탕이 되는 의학지식은 거의 모두 ‘원인->결과’라는 인과성/인과관계(Causality)에 관련되는 내용으로, 인과관계의 ‘결과’로 설정하는 상황은 바로 의술/의료의 표적(target)이 된다. 따라서 의술의 표적, 즉 인과관계의 ‘결과’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바탕이 되는 의학지식 내용/영역은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질병발생’ 또는 ‘건강 파탄’이 결과가 되는 원인요인에 관한 지식은 예방의학/의료에 해당되며, 질병상태 또는 질병의 특성(또는 병태, 病態)을 결정짓는 요인에 관한 지식은 진단검사의학/의료, 그리고 질병경과와 그 경과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 관한 학문지식은 치료의학/의료에 해당되며, 또한 생체기능 발현/회복 요인들에 관한 지식은 재활의학/의료의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치료의술/의료로써 질병 발생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항암치료로는 암 발생을 예방하지 못한다. 다른 예로, 자전거 사고로 다친 다리를 치료하는데, 사고원인, 즉 해당 자전거에 대한 바탕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한편, 단일원인에 의한 질병발생(예: COVID-19와 같은 감염/전염병)에서는 예방의술(예: 살균/소독)이 곧 치료의술의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치료의술은(예: 백신접종) 예방의술이 되지는 못한다. 백신접종이 원인균/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백신접종의 목적은 질병에 걸렸을 경우, 질병경과가 경증으로 끝나도록 하는 것으로(= 중증예방) 이는 치료의술에 해당된다.

   현대의 질병양상은 과거 ‘감염/전염병(infectious disease)’에서와는 달리 다(多)요인들이 만성적 또는 장기적으로 복합 작용하여 유발되는 질병, 즉 복합성 질환(complex disease, 과거 ‘만성퇴행성질환’, ‘생활습관 병’등으로 불리었다.)시대가 되었다. 더불어, 예방의술/의료와 치료의술/의료는 더욱 확연이 구분되고 있다. 

   치매에 대한 치료약이 치매 예방약이 될 수 없음은 현대의학/의술이 지니고 있는 특성, 즉 효능의 표적특이성(specificity)과 효능검증의 엄정성(parsimony)에 따르는 결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