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백러시아 출신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가 쓴 "마지막 목격자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소련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엮은 책이다. 그 책 속에서 나에게 특별한 충격을 준 구절로서 소개하고픈 것은 두 명의 증언이다. 

먼저 당시 열 네 살이었던 골드베르크의 증언이다. "난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흥분하면 안 되거든요. --- 전쟁 기간에 어린애였던 사람이 전선에서 싸운 자기 아버지보다 더 빨리 죽는답니다.---난 이미 많은 친구들을 묻었지요."

다음은 당시 여덟 살이었던 유리 카프로비치의 증언.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아군 포로들이 밤에 머물던 자리에 가보면 나무에 껍질을 �A아먹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먹을 것 대신 썩은 말이 던저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말을 갈기갈기 ��었죠.---철도에서 일하던 사라들이 (전날 밤의 사보타주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군에 의해) 아침에 전부 레일 위에 �또賤側� 그 위로 기관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독일군이 총검으로 어머니들 품에서 아기들을 낚아채어 불에 던지는 것을 봤습니다.---난 이런 기억들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었습니다. 침울하고 의심많은 어른이 되었죠.---두 번 결혼했는데 두번 다 아내에게 버림받았습니다.오랫동안 날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지금 나는 묻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봤을까? 만약 보셨으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들의 증언에 더 할 나위없는 공감과 슬픔을 느끼면서 줄줄이 떠오르는 여러 생각을 대강 메모한다. 

어린 시절에 보낸 시간은 성인시절의 몇 곱의 중요도를 가지고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1948년 가을에 태어나 1950-53년의 육이오 사변을 무사히 지내고, 인지능력이 생긴 1953년부터 햇수로 4년간 인천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부친은 관리(인천시 부시장)였고, 대지주였던 조부의 토지개혁 보상금도 받고해서 생활은 궁핍하지 않았던 것같다. 

휴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당시 의식주에 풍족함이 어디 있었겠는가? 다만 자유공원에 인접한 조그만 관사에서 부모와 다섯 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고 산 그 때가 내가 가장 행복에 근접했던 시절인 듯 싶다. 의식주가 해결되었고, 생로병사에 무지하고 무심했던 시절이니까. 

그 때의 안온했던 생활이 내 심성에 키워준 그 무엇이, 그 후의 가난하고 우울했던 청소년기, 질병과 실의로 괴로왔던 청년기를 거쳐 지금의 노년기까지 삶을 견디며 영위해 오기까지, 나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남들이 보기에 사악한 인간이 아니라면 그것은 유소년 시절의 짧았던 행복에 많이 신세진 것이리라. 

이어진 생각. 

위의 명제에서 어린이에 대한 학대와 범죄, 특히 성폭행은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망가뜨리는 비극을 초래한다는 주장이 타당하게 도출된다. 그러므로 아동에 대한 범죄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물건너 미국에서는 아동 성범죄자는 교도소 안에서 생명을 온전히 부지하기가 힘들 정도로 동료 죄수들로부터 모진 대우를 받는다고 하며, 내 정의감은 이를 바람직하다고 긍정한다. 

이에 비추어 조두순사건에서 그의 극악한 범행, 여아를 강간하고 증거를 없앤다고 저지른 행위에 비추어 12년의 징역형은 터무니 없이 낮은 형량이었고 심히 부당한 양형으로 오판이라고 하겠다. 

요즈음 출소한 조두순을 린치하기 위하여 어떤 청년이 조의 집에 침입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 관대한 처분이 내려져야 하지 않을까? 

다음 생각. 

지금 러시아는 침략자로서 예전의 형제, 우크라이나 인민들을 죽이고 있다. 유아기에 2차세계대전을 겪고 이 책에서 증언했던 사람들 중 몇 몇 노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아직 생존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들은 러시아 침략군의 무차별 포화 아래에서 진즉에 죽지 못했음을 비탄 속에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도 북녁에 푸틴 못지 않는 호전적 독재자가 수령으로 있는만큼 안보에 조금의 빈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리라. 생의 초기에 육이오사변을 겪은 우리 세대가 생의 말기에 다시 전쟁의 참화를 겪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말이다. 

이어서 생각. 

"마지막 목격자들"에서 증언한 아이들 중 가족이 온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모든 가족이 죽어버려 혈혈단신 고아가 되기도 했다. 

반면 육이오 사변을 겪으면서 가족과 친가친족 중 한 명도 죽거나 불구가 되지 않았던 우리 할아버지 자손들은 얼마나 축복받았나! 군인으로 참전했던 두 분 (막내 숙부와 사촌 형)은 무사히 귀환했고, 아버지 대, 다섯 집안 가족들은 피난하는 도중 폭격을 맞거나 인민군에게 잡혀 변을 당하지도 않았다. 

더우기 조부가 삼천석지기 지주였고 부친은 상공부 공무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난처이자 고향인 공주에서 그 누구도 부친이나 백숙부둘울 고발하여 인민재판에 부치지 않았음은 하늘의 보살핌이라고 할까, 조상의 음덕이라고 할까?

듣기로는 증조부와 조부가 소작인들에게 관대하게 대하여 인심을 잃지 않았던 덕분이라고들 했다. 적덕지가(積德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라고나 할까? 

그런데 의문은 우리 대, 후손 중에 아무도 크게 출세한 자가 없어 잔치를 벌이는 경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풀이하기를 소원 티켓 내지 조커가 단 한 장 뿐이라서 육이오 사변에 전원 무사로 그 티켓 내지 조커를 써버렸기 때문이라는 설과 경사란 무탈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지, 크게 출세한 다음 그로 인해 자살하거나 감방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