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와 평안도 사이에서의 끝없는 시련

지난 주 어쩌다가 YouTube에서 이승기, 차태현, 김범수와 한효주가 나오는 짤막한 것인데, 제목의 일부 ‘충청도 사투리’가 내 눈을 끌었다. 너무 재미있게 보았고, 오늘날까지 궁금하던 내 자신의 됨됨이에 대해서 큰 답을 얻었다.

내 어머니는 어머니의 할아버지가 군수로 있던 공주에서 자란 양반집 딸이었고, 외할아버지가 정부의 광무국 (Department of Mining)에 자리를 잡자 모두 서울로 와서 화동에 자리를 잡았고, 어머니는 경기여중/여고를 다니셨다. 내 아버지는 영변, 태천, 박천, 세 곳에서 군수를 하시다가 서울로 오셔서 화신백화점 사장을 하시던 친할아버지의 원남동 집에서 걸어서 화동에 있는 경기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화동의 어느 골목을 어머니는 아랫 쪽으로, 아버지는 윗 쪽으로 걸어 가면서 거의 매일 부닥친 모양이었다. 마침내 아버지는 여학생의 집을 찾아가서 훗날 장인에게 “커서 어른이 된 다음에 제대로 된 길을 찾아서 구혼을 하게” 훈계를 받고, 태평양 전쟁이 끝날 무렵 일본군에 징집이 되었다가, 해방이 되고 2년 후에 두 사람은 결혼을 하였다.

평안도 특유의 활달한 성격에, 사람 좋아하고, 속마음을 즉각 표현하는 아버지, 그 반면에 충청도 양반 특유의 모습으로 시간을 무진장 쓰면서 은근하게 속마음을 분명히 보이지 않는 어머니, 그 극에 극으로 다른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고 한 평생을 버틴 것은 자식들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었을 것 같다. 지금 뒤돌아보면, 어머니 형제들은 자주 모이고 유대를 강화하고 그 양반 가족 문화를 유지하는데, 아버지 형제들은 서로 “잘 살고 있겠지” 믿으며 그날그날 일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친구/동료들과 술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었다. 몇개 우스운 추억, 예를 들자면: 가족이 어디에 갈 때, 성격이 급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하오?” 하면, 어머니는 충청도 사람같이 “조금만 있으면 돼요, 10분이면 되겠지요.” 대답. 문제는 정확히 10분이 지났는데도 어머니는 준비가 안 돼있고, 아버지는 “에이!” 하고 혼자 나가서 없어지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제자에게서 들었는데, 충청도 어느 곳으로 발굴을 갔었는데, 산길에서 마주친 어느 남자에게 길을 물으니 그 작자가 충청도 특유의 말투로 시간을 너무 끌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이!” 하며 울화통이 난 아버지는 그냥 가버리더라는 것. 내가 결혼하고 몇 년 후에 아버지가 내게 한 말, “자기 처에게 이기려는 남자는 천하의 바보다. 네 에미로 말 하자면, 나랑 다투다가 좀 길고 힘들어지면, 지는 척해서 나는 내가 이긴 줄 알고 있는데, 그 다름 하루가 걸리건, 1년이 걸리건, 아니면 10년이 걸리건, 꼭 끝에는 자기가 이겨야 하는 무서운 사람이다. 거기에 당해낼 수 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 이 두 사람 틈에서 큰 고통을 느끼지 않고 큰 나 자신도 어떻게 보면 신기하다. 한 때 우리나라 고위 정치인에 공주 출신이 하나 있었다. 그러다, 그의 아내가 무슨 비리를 하였다고 신문이 떠들었는데, 내가 어머니에게 “이 정도면 미국 같으면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데요.” 했더니, 어머니 왈, “그 사람이 공주 출신인데, 이 세상에서 공주 사람들이 최고로 고집에 쎈 사람들이다. 두고 봐라, 절대로 물러 나지 않는다.” 지켜보니 어머니 말이 맞게 떨어졌다. 그럼 아버지 쪽은? 아버지의 외숙모께서 나에게 하신 말, “너희 평안도 출신 김씨 남자들은 속들이 깨끗한 것은 좋고, 머리들은 있지만, 너무 급하고, 급하게 결론을 짓는다. 일단 속단을 하고 한 방향으로 갈 때, 옆에 보던 사람이 “그리 가면 큰 바위가 있으니 조심하오” 말하는 것을 듣고도, 자기 멋대로 가다가 이마를 빡 부딧쳐 피가 나는데도, 다시 똑 같은 방향으로 가다가 두세 번 이마를 깨야 정신을 차리는 사람들이다. 종민이, 너는 그렇지 않지?” 영문학과의 창작교실에서 내 부모에 대해 몇 번 썼는데, 하나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Fire and Ice (Robert Frost가 쓴 유명한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라고 비유를 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상대방 쪽 가족 문화에 대해 좋게만 느끼지는 못 하셨다. 어머니 쪽에서는 평안도 아버지 쪽을 대 놓고 말하지는 못 했지만, “사람이 되려면 아직 한참 먼 놈들” 정도로 생각하셨고, 아버지는 내게 “네 어머니 쪽 집안은 허위와 위선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다.” 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한 때, 어머니는 나에게 “네 아버지는 참 비겁한 점이 있다.”라고 했는데, 아마도 충청도 사람 같은 끝없는 고집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처음 느낀 고충은 보고서나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어느 상관의 말, “실험한 내용을 상세히 쓰고, 결론이 보이면 분명하게 직선적으로 써야 되는데, 너는 자료가 충분한데도 결론을 분명히 안 내리고 빙빙 도는 것 같다. 당장 그 버릇 고치게.” 그러나, 그 버릇을 완벽히 고치는 데는 50이 넘어서였다. 그 버릇을 고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꾀를 부려야 할 필요를 느꼈다. 너무 보고서를 완벽하게 쓰면 직속 상관이 싫어 하는 것이었다. 나의 ‘빙빙 도는’ 경향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천년이 넘게 우리나라 사회를 지배한 유교 문화가 주원인인 것 같았다. 밑의 놈이 똑똑한 소리를 하면 양반에게 얻어 맞는 사회였으니까. 지난 주에 한효주와 김범수가 말하는 것을 보고, “아, 내가 빙빙 돌았던 것은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충청도 습관이다!”라고 느끼게 되었다. 한효주 말에 충청도 사람에게 뭘 권할 때, 꼭 세번 이상 권해야 된다고 한다. 20년 전쯤 회사에서 주는 일본어 강좌를 들었는데, 일본인인 여선생이 “일본에서 일본 사람에게 뭘 권할 때는 꼭 세번 이상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쪽에서 당신에게 무슨 선물이나 호의를 베풀려고 할 때, 꼭 세 번은 거절하는 척해야 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추측하는 것은 그런 일본 사회문화는 천5백년 전에 백제가 망하고 백제인 20만명이 일본으로 가서 일본 사회를 정복할 때에 자연히 뿌리를 내린 문화였겠다. 그런 문화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것, 참 신기하다.

다시, 내 얘기로 와 보자. 내 아내가 했던 말, “당신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즉각 그대로 해 내는데, 어떤 때는 좀 창피할 정도로 말을 많이 해.”        이 것은 평안도 특성이겠다.  한 때 내 상관이 했던 말, “자네는 무슨 과제를 받으면, 나중에 그 일의 가치가 없어져서 그만 하라고 얘기해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네. 그 점을 고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못 하겠으면 그 성향에 맞는 과제를 찾아 주어야 되겠네.” 그렇게 붙들고 늘어지는 것, 나의 충청도 피가 아닐까? 나를 중학교 때부터 보아 온 친한 친구의 말, “너는 첫번째 여인에게서 받은 상처를 일생 잊지 못하고, 그 고통을 잊으려고 하는 것인지, 영문학이나 창작 같은 어려운 것들을 사서 고생하는 것 같다.” 글쎄다, 급하게 사람에 빠지는 것은 평안도인데, 끝없이 못 잊는 것은 충청도가 아닌지.

60이 되기 이전에는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즈음 내 성격을 보면 어머니 쪽이 더 쎄어진 것 같다. 앞으로 더 변할지, 두고 볼 일이다. 여기 내 동네 글쓰는이들 모임에서 얼마 전에 누가 “늙은 남자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 뿐이다.” 그런지, 충청도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