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엔 무슨 일이 그리도 많았던지 하루도 쉬지 않고 불려 나갔다. 아니지 모임마다 찾아 다녔지. 고등학교, 대학교, 해군, 사회 그리고 가족 모임까지... 겹치면 하루 이틀 미루거나 낮밤 두 탕을 뛰면서 참 바삐도 보냈네. 그러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 먹다 남은 음식 再湯하듯이 맛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괜히 나갔네 하는 모임도 있었고 하도 재미나 통금에 쫓기듯 지하철 막차를 놓치면서까지 놀던 일도 있었고... 하여튼 늙어서 談笑和樂하는 일이 좋다.

그런데 노는 일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인가? 유효기간이 한참 지나서야 정신줄을 잡고 12월 삼목회 후기를 쓰려다 보니... 어? 강연녹음을 분명히 아이폰에서 USB로 옮겨놓고 지웠던 기억인데 그 USB 어디 갔지? 산우회 송년모임에 노트북 갖고 나갔다가 빠뜨렸나? 아니면 기억에 문제가 있나? 굴러다니는 USB를 다 열어봐도 없고 PC의 삼목회 폴더에도 없다. 그 뿐인가? 내 아이폰은 녹음에 쓰고 누군가의 스마트폰을 빌려서 강연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받아두지 않았네? 그 친구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벌써 다 지워버렸겠지?

할 수 없이 삼목회 카톡방에다 도움을 청할 밖에...

“12월 삼목회 후기를 이제야 정신이 나서 쓰려고 했더니... 하두 오래돼서 그런가 강연사진도 없고 녹음자료도 어디 저장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큰일이다. 그 날 누군가의 스마트폰을 빌려 강연사진을 찍었던 기억인데 모르겠다. 끝나고 밥 먹는 사진 밖에 없네. 그 친구가 사진 다 지웠을까 걱정이다. 그런데 누구였던가? 혹시 누구 따로 사진 찍은 친군 없나”

그랬더니 이태준으로부터 야단치는 듯한 답이 왔다. “안해도 돼!” 때를 놓칠세라 얼른 대꾸하기를...

“태준아, 나하고 내일 만나 강연 복기하자! 그리고 후기 쓰면 되겠다. 사진도 적당히 연출해서 찍자. 12월 삼목회 사진인 것처럼!”                    

이내 답이 왔다. “평일엔 나갈 수 없어. 내일 중으로 요약해서 보내줄게. 니가 재미있게 살을 붙여.”

“아니, 나보고 역사 왜곡하라고?”, “역사가 다 그런 거 아냐?” 노인네들의 수다가 계속됐다.

그런데 정말 오늘 낮에 강연 요약문이 왔다. 내가 벌집을 잘못 건드렸나... 요약이라고 하면서 실은 더 보탠 글이 아닌가? 너무나 길다. 그래도 강연녹음 잃어버린 놈이 죄인이지. 그대로 옮깁니다.

“교과서 국정화문제로 국론이 두 갈래로 갈라져 치열하게 싸운다. 역사는 사실대로 기술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다. 우리는 자기가 아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고 진리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로마시대에 살지도 않았으면서도 네로 황제는 포악한 황제로 알고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위대한 인물의 경지를 넘어 거의 성인에 가까운 위인으로 추앙한다.

우리는 네로 황제와 링컨 대통령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어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쓴 소설 Quo Vadis(주여, 어디로 가십니까?)가 영화로 만들어져 빅히트하는 바람에 네로는 졸지에 포악한 군주의 대명사가 돼버렸고 60만이 넘는 젊은 남자가 전사하고 백만이 넘는 남자가 불구자가 돼야했던 남북전쟁의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링컨은 사실 이상으로 미화되었다는 사실은 가려져 있다.

물론 네로는 나쁜 군주였고 링컨은 훌륭한 지도자였다는 걸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나 과장되고 미화된 것은 사실이다.

역사는 필요에 의해 왜곡되고 때로는 과장 미화 조작되기도 한다.

모두가 양심적으로 사실만 기록한다면 역사논쟁이 있을 리 없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위안부 문제로 싸울 리도 없고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남경 대학살 문제로 다툴 리도 없는 것이다.

조선말 1866년에서 1871년 사이에 일어났던 제너럴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우리 역사에서는 서구 열강들이 조선을 향해 문호개방과 통상을 요구하다 일어난 사건이라고 가르친다.

정말 그랬을까? 정말로 서구 열강들이 조선에 욕심을 내어 무력을 앞세워 문호개방과 통상을 요구하다 일어난 충돌이었을까?

먼저 이때의 열강들이 당면해있던 자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이 문제의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간략히 서술한다.

미국은 4년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남북전쟁이 끝나고 알라스카를 매입해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는 국가가 되었다. 프랑스로부터 미국 중부지역을 사들이고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캘리포니아, 텍사스, 콜로라도, 유타 등 사람이 거의 살지않는 광대한 영토를 갖게 되었던 미국이 알라스카까지 매입함으로서 일약 거대한 영토의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 휘말려 패전의 늪에 빠져있을 때였다.

스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는 아직 개통되지 않을 때였고 미국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당시의 유럽국가들은 신천지인 중국에 뛰어들어 제각기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는데 열중했으나 중국 옆의 작은 변방인 조선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돌발사건이 제너럴셔만호 사건이었다.

제너럴셔먼호는 미국해운회사 소유의 상선으로 당시 중국 천진에 정박 중 조선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왔다가 평양주민들과 충돌해 선박은 전소되고 선원은 전원 죽임을 당했던 사건인데 일개 해운회사 소속의 상선이 평양에 와서 문호개방과 통상을 요구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선원들은 대부분 말레이인과 중국인이었고 선주, 선장, 항해사, 그리고 토마스 목사 등 5명만 유럽인이었는데 토마스목사는 중국에서 조선말을 조금 배워 통역으로 자원해서 합류하게 된 인물이다.

승무원 전원이 아무런 재판이나 조사도 없이 처형되는 바람에 이들이 왜 조선의 평양에 갔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으나 사건 직후 미국측에서 조사한 바로는 이들이 조선의 왕릉에는 금이 많이 묻혀있다는 소문을 듣고 도굴하러 간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W.E Griffis: Corea, The Hermit Nation)

당시의 조선을 장악하고 있던 대원군은 서해에서 난파당한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해군이나 상선의 선원들에게 인도적 배려를 해주고 있었는데 이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미국의 보복이 있지나 않을까 겁을 내고 있던 차 5년 뒤 어느 날 강화도에 나타난 미국 해군함정의 등장에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우리 역사는 미국함정이 강화도에 나타나 평양에서 죽은 미국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함과 동시에 역시 문호개방과 통상을 요구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어디에 근거해 그렇게 기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기술한 것은 아닐까? 일개 해군제독이 미국대통령의 위임장이나 친서도 휴대하지 않고 제독 재량으로 독단적으로 외교관계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사건은 당시  당직장교의 일지가 지금 미국해군사관학교 도서관에 보존되어있고 오래전 우연히 나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르게 기록되어 있었고 Griffis교수의 저서에도 전혀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도 Griffis교수의 의견이 옳다고 본다.

미국해군은 미국정부로부터 구체적 지시를 받고 조선에 온 것이 아니라 미지의 나라에 대해 어떤 정보를 얻을 목적으로 한강을 탐사할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병인양요는 대원군의 천주교박해로 프랑스 성직자들이 여러 명 죽게 되자 이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왔던 것이 분명하고 여기에 조선인 신자들도 이 조선원정에 가세했던 것 역시 부인할수 없다.

요약문이 이쯤 되고보면 녹음자료 잃어버렸다고 난처해야할 이유가 없다. 강연 요약문이 아니라 강연 實錄이라고 해도 되겠다.

어떻든 이태준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역사의 왜곡”이 아닐까? 강연 제목을 정해주지 않아 내맘대로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서해바다에 나타난 異樣船” 이라고 갖다 붙였었는데 내 왜곡이다.

야! 태준아, 다음엔 “자네 인생의 왜곡”에 대해서 한 말씀 하면 어떨까?

2016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