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그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2019년 10월 20일 경기고 62회 신우회 월례 예배)
본  문 : 누가복음 18:1~8

   혹시 열심히 기도하다가 낙심한 적이 있습니까? 낙심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는 아니라도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기도하기를 멈춘 경우는 종종 있었을 것입니다. 기도할 열정도, 필요도, 동기도 사라지게 되면 더 이상 기도하지 않게 마련 아닙니까? 응답 받을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또 별로 시급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바로 그런 기도에 대해서 도전을 주는 비유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주제가 무엇인지 말씀을 시작하면서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냥 읽으면 이 말씀은 낙심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기 또는 기도의 끈기, 기도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로 읽기 쉽습니다. 한 과부가 있었는데 불의한 재판장에게 자주 찾아가서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간청했더니 결국 그 요구를 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적용해서 우리도 계속해서 열심히 기도하면 결국 하나님께서도 들어 주실 것이라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 이 말씀은 기도 자세에 대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기도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의 모델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모습과 상반되는 그림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 자체가 비교가 아닌 대조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재판장은 불의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리고 과부는 불의한 재판장과 별로 관계가 없지만 밤낮으로 부르짖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너무나도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초점은 기도의 내용에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속히 풀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기도 합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의 원한은 아마 억울하게 빼앗긴 재산을 되찾는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원한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6장 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큰 소리로 부르짖는 소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그렇습니다! 성도들의 원한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원한 때문에 부르짖는 간구에 대한 궁극적인 응답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 가운데 이뤄질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일찍이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나라가 임하시오며”(마 6:10 상반절)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할지 묻는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에게 그 날은 노아의 때나 롯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매몰되어 있을 때 갑작스럽게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일상에 함몰되지 말고 깨어 있어서 그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이 비유의 말씀이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도 그 나라가 더디 오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 나라를 굳게 붙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꿈꾸는 삶, 그리고 그 나라의 도래를 구하는 삶, 그 나라의 도래를 믿고 기다리는 삶이 바로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는 것을 주문처럼 늘 외우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더 이상 그 나라를 고대하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게 된 현실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더 이상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세상 나라에 완전히 도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나라를 대적하는 세상 나라가 주는 술에 취해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결국 만물이 새롭게 되는 그 나라를 기다리는 믿음을 찾아 보기 어렵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유난히 기도를 많이 하고 또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수능 시험을 앞둔 학생들처럼 밤새워 기도하기도 합니다. 각종 기도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이 바로 믿음의 척도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가 “열려라 참깨!”와 같은 주문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일종의 기도 만능주의가 한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본문 마지막 8절 하반절 말씀은 약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차라리 8절 상반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로 말씀을 끝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기자는 인자가 올 때에 라는 말을 통해서 이 말씀의 핵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자는 세상 마지막 때에 심판주로 오실 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때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을 보기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영적 긴장감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주된 관심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곧 재림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살아 있을 때에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초대 교회가 사유 재산을 포기한 공동체처럼 그린 구절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곧 재림하신다면 학교에 갈 필요도 없고 주택을 소유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재림이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배경에 놓고 보면 이 비유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좀 더 분명해집니다. 간단히 말해서 과부의 원한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초대 교회 성도들의 기다림입니다. 과부는 원한을 풀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우습게 생각하는 재판장을 무모하게 계속해서 찾아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은 존재 근거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해체됩니다. 재림은 곧 성도들에게 과부의 원한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8절 말씀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무슨 말입니까?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와 같은 말입니다.(계 22:12 참조) 재림은 현실에서 지체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속히 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현실과 약속 사이에 갭이 있습니다. 그 갭을 넘어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에서만 초대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었던 과부의 심정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믿음에서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재림의 지연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긴장을 오늘 우리도 똑같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재림의 지연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대개는 일상에 필요한 것을 채우라는 세상의 요구와 타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모든 삶의 에너지를 쏟습니다. 교회도 개별 교회의 성장에만 교회의 동력을 쏟습니다.

   사랑하는 경기고 62회 신우회원 여러분! 그리고 함께 예배드리는 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과부의 영적인 절박성입니다. 이 세상의 완전한 변화를 향한 열망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비록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지만, 그리고 세상은 전혀 새로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완전히 바꾸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열망이 곧 참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참으로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참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