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푯대를 향하여
(2020년 10월 18일 경기고 62회 신우회 월례 예배)
본  문 : 빌립보서 3:7~14

   성경에는 듣기 민망한 이야기가 제법 많이 나옵니다. 빌립보서 3장 2절 말씀도 그렇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사실 그가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은 부도덕하거나 파렴치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반인륜적이거나 반사회적인 사람들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위 할례파라고 하는 그들은 율법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들을 개라고 부르며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했습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들이 먼저 사도 바울을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이나 그가 쓴 여러 편지들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그를 괴롭혔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그가 개척한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그를 공격했습니다. 때문에 어떤 교회들은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주장이 복음을 훼손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만 훼손되지 않았으면 그는 참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은 그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 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묵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파의 주장을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문, 도덕성, 학문적 업적, 구제, 종교 행위 등을 내세웠습니다. 사실 육체의 자랑이라면 사도 바울도 꿀릴 것이 없었습니다.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또 과거에 교회를 박해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소 출신 유대인으로서 종교적인 면에서나 학문적인 면에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쓴 편지 중에서 최소 10편이 신약 성경으로 채택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그 길로 계속 나갔으면 그는 당대 가장 위대한 유대인 랍비로 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열거한 것들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높게 평가되던 것들입니다.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가 자랑거리로 여기던 그런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자신이 자랑으로 여기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한 것은 자신을 수준 높게 보이려고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런 자랑거리에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거나 풍요롭게 하는 영양분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꿰뚫어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칭찬받고 또 인정받아도 그는 자유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삶의 완전한 방향 전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삶의 중심을 바꿔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는 의에 이르는 길을 완전히 다른 데서 찾았기 때문에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긴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9절 말씀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사도 바울은 의를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율법에서 온 의와 하나님에게서 온 의입니다. 여기서 의는 구원이라는 말로 바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궁극적인 길은 하나님에게서 온 의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의가 온다는 말은 구원이 율법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런 길로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본문 10절,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 있어도 언젠가 죽는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궁극적이지 않습니다. 죽은 자라는 표현은 우리의 궁극적인 실존을 가리킵니다. 누구도 이런 실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착한 사람도, 위대한 예술가도, 영웅호걸도, 목회에 성공한 목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나쁜 경우는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십자가의 죽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습니다. 즉 더는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부활에 이르고 싶다는 사도 바울의 갈망을 함께 느끼면서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와 똑같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흉내라도 내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힘들더라도 시간을 아껴가면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2절과 14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를 향해서 달려간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달려가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뒤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것은 배설물입니다. 이전 것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런 사람의 삶은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새롭습니다. 자기가 새로워졌으니 세상도 새로워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기고 62회 신우회원 여러분! 그리고 함께 예배드리는 가족 여러분! 사도 바울은 본문 13절 말씀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한다.”고 외쳤습니다. 이야말로 시시한 율법의 의가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의에 붙잡힌 사람에게 나타나는 삶의 특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그 주님을 끝까지 믿고 따라감으로 말미암아 장차 그 보좌 앞에서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아 쓰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