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2020년 12월 20일 경기고 62회 신우회 월례 예배)
본  문 : 누가복음 2:8~20

    누가복음 기자는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다윗의 동네 허름한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구세주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아기의 탄생은 소수의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나라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아기의 탄생과 함께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땅 위의 평화를 노래했습니다. 그 탄생 자체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로마 제국과는 질적으로 다른 가치들을 실천하셨습니다. 그 주님이 선포하신 처음 말씀의 내용은 사회적 약자들을 해방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치유하며 자유롭게 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로마 황제의 제국은 백성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소수 특권층의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주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귀하게 지으심을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쳐 주고 그 생명을 회복시키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주님은 로마 황제와는 달리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치유, 섬김과 나눔의 본을 통해서 평화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로마가 추구했던 그 평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다는 사실 자체가 참 평화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목도한 후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누가복음 기자는 그들이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 책을 마감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탄생 이야기는 누가복음 기자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전하려고 하는 복음의 메시지들을 압축해서 전하기 때문에 축소판 복음서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내고 있는 것처럼 축소판 복음서라고 부를 수 있는 예수 탄생 이야기도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 구세주라고 스스로 자신을 승격시키고 신적인 숭배를 원했던 로마 황제로서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내린 인구 조사 명령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그는 알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역사를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탄생 이야기는 온 인류에게, 그리고 우리 각 사람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 예수 탄생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하다가 천사들의 계시를 받고 행동에 옮기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임신한 몸으로 무리한 여행을 해야 하는 마리아를 보호하고 돕는 요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탄생을 둘러싼 모든 신기하고 놀라운 사건들을 마음에 새기고 생각하는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로마 황제의 통치 하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새로운 왕의 탄생 사건에 참여하는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인물들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께 대해서 예민하게 깨어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천사가 떠나자마자 마리아가 보인 반응과 목자들이 보인 반응은 똑같이 빨리 가서 천사의 이야기를 확인하려고 하는 열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닫힌 생각과 무사 안일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서 열려 있는 겸허하고 신실한 사람들을 예수 탄생 사건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런 일꾼들을 찾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탄절을 상징하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목자들의 소박한 모습은 세속적 권력과 패권, 성공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세상의 문법과는 다른 삶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에 누울 자리가 없어서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는 아기 예수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질주하고 있는 우리의 삶의 방향과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전염병은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대규모 자연 재해도 속출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은 우리에게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물량주의와 성장제일주의 가치관을 버리고 생명을 존중하며 가정과 사회에서 생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소박한 생활 방식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을 성탄절답게 보내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생각하는 일부터 좀 어른스러워져야 합니다. 성탄의 정신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면 성탄절조차 어느새 소비 문화를 부추기는 계절이 되었다는 사실에 불편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주님은 동시에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하는 지혜와 통찰력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계속되는 거듭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구유에 나신 겸허한 사건으로 되돌아갈 때 우리의 거듭남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성탄절은 인류 구원의 선물을 경축하는 날이요 탐심과 경쟁의 옛사람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의 기쁨으로 충만한 새 사람을 입는 길을 상징하는 날로 다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신우회원 여러분! 그리고 함께 예배드리는 가족 여러분! 주님은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려고 주님이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장차 그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 듣기 위해서라도 늘 겸손하게 그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