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6일 경기고 62회 신우회 월례 예배)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우리 주님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막 시작하시던 때의 모습을 우리에게 아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앞서 누가복음 3장에서는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던 모습을 볼 수 있고 누가복음 4장 앞부분에서는 주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시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누가복음 기자는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주님이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신 것을 소개하는데 특히 주님이 자라나신 곳 나사렛의 회당에서 안식일에 말씀을 읽으시고 설교하신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과는 시간적으로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공관복음서들에는 이 사건이 갈릴리에서 주님의 사역이 한참 진행되고 난 후의 시점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기자가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사건을 마치 주님의 공생애 첫 번째 사역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그렇게 소개했을까요?

   거기에는 나름대로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학자들은 그 의도를 이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우선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리고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주님의 사역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분명히 밝힌 후 마지막으로 주님의 이런 사역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알리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먼저 주님이 이사야 61장을 인용한 첫 구절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하신 것을 보면 주님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으신 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기도하시는 가운데 성령을 받으셨고 그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도행전에서 주님의 그 사역을 이어가는 사도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함께 열심히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바울의 회심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바울은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직가라 하는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나니아에게 안수 기도를 받고 성령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종합해 볼 때 하나님의 일꾼은 기도하여 성령을 받고 그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한다고 하는 하나의 도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충만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여기서 기도란 나의 뜻을 이루게 해 달라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릴 때 성령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공생애 첫 사역이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고 그 말씀을 풀이하신 것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회당이라는 장소는 유대인들의 친교와 기도와 예배의 중심이었습니다. 이런 회당에 주님은 안식일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셔서 성경 말씀을 읽으시고 해석하시는 일을 성실하게 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당에 마음 편하게 나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공식적인 예배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예배당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동안 어쩔 수 없이 개인이나 가족끼리 모여 비대면 영상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이는 전염병이 창궐한 특수 상황 때문에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가 공간적인 것에 매여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배당에서만 예배드릴 수 있고 그 밖에는 예배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는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 즉 각자의 가정이나 일터도 우리의 전 존재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기자는 주님이 행하실 사역을 매우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운 일입니다. 말 그대로 크고 놀라운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놀랍게 여겼지만 그 주님을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주님을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경기고 62회 신우회원 여러분! 그리고 함께 예배드리는 가족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도 먼저 기도하는 가운데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바로 그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해야 합니다.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그들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의 많은 방해와 핍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만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맡겨진 그 일을 잘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